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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최초의 프로골프대회는 서울컨트리클럽(이하
CC)에서 1958년 6월 12일부터 4일간 개최된
한국프로골프선수권대회다. 당시 프로 선수라고는
연덕춘, 신봉식, 박명출 셋밖에 없는 상황이어서
선수 양성을 목적으로 창설된 대회다. 출전 선수는
세 명의 프로와 함께 프로를 준비하는 양성자 14명
총 17명이 참가했다. 대회 주관은 한국프로골프협회가
창설되지 않아 서울CC에서 맡았고, 1968년 한국프로
골프협회(KPGA) 창립을 계기로 협회 주관으로 바뀌게
된다. 당시 프로 양성자로 이 대회에 출전한 선수는
김복만, 김성윤, 김학영, 문기수, 문홍래, 배용산,
이동출, 이일안, 조암길, 조한구, 차민재, 표영환,
한성재, 한장상(가나다순)의 14명이었다.
첫 대회에서는 한국 프로 골퍼 1호인 연덕춘이
4라운드 합계 306타로 우승했다. 그리고 이 대회는
한 해도 빠지지 않고 지속적으로 개최되는 대한민국
역대 최고(最古)의 대회로 자리매김하게 된다.
초창기에는 대회 출전 성적이 자연스럽게 프로 골퍼의
자격을 부여하는 기준이 되었다. 그런 연유로 1968년
5월 KPGA가 출범하기 전까지 이 대회를 통해 12명의
프로 골퍼를 탄생시켰고 이들은 KPGA 창립 회원이 됐다.
이 대회는 서울CC 12번, 한양CC 8번, 휘닉스파크GC
4번, 뉴코리아CC 3번 등 전국의 골프장을 돌아가며
개최했으며 한장상, 김승학, 최상호, 박남신, 최경주,
신용진, 박노석, 김대섭, 김형성 등 국내 프로 골프계를
대표하는 선수들을 꾸준히 배출했다.
역대 우승자는 총 27명인데 초대 우승자는 연덕춘이며
최다승은 한장상이 4연패를 비롯해 7번(3, 5, 7, 11,
12, 13, 14회)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그 뒤를 최상호가 6번(25, 28, 29, 32, 35, 37회),
최윤수가 3번(30, 31, 33회), 이일안(10, 16회),
김승학(19, 23회), 임진한(26, 27회), 박노석(43,
46회), 신용진(39, 44회), 김대섭(45, 48회)이 각각
2번에 걸쳐 타이틀을 차지했다. 주한 미군 무디(2,
9회)도 2번의 우승 타이틀을 가지고 있다.
역대 최저타 우승 기록은 2001년 신용진이 휘닉스
파크GC에서 기록한 22언더 266타이고, 18홀 최저타는
44회 대회 2라운드인 2001년 8월31일 박도규가 기록한
10언더 62타다. 연장전을 통해 탄생한 우승자는
모두 세 명이다. 첫 번째 연장전 우승자는 조태호로
이일안과 1977년(20회) 안양CC(현 안양베네스트)에서
290타를 기록한 후 연장전에서 첫 승의 감격을
맛보았다.
두번째는 1991년(34회 대회) 한양CC에서 조철상이
4라운드 합계 2오버파 290타를 기록한 후 박남신과의
연장전 끝에 우승자가 됐다. 세 번째는 1999년(42회
대회) 천룡CC에서 강욱순이 8언더파 280타를 기록한
후 신용진과의 연장 두 번째 홀에서 이겼다.
KPGA선수권은 1988년(31회)부터 당시 KPGA회장
이일안이 타이틀스폰서를 유치해 스폰서 대회로
개최되기 시작했다. 이듬해는 삼성물산이 ‘아스트라’
라는 브랜드로 골프 의류 시장에 본격 진출하면서
타이틀 스폰서로 나섰다. 대회 명칭도 ‘아스트라컵
한국프로골프선수권대회’가 됐다.
삼성물산은 지방 골프 활성화와 마케팅 전략 차원에서
지방 순회 개최를 시도했다. 그래서 1993년(36회)에
부산 동래CC, 1995년(38회) 전라북도 이리CC, 1996년
(39회) 전라남도 광주CC에서 개최했다. 이같은
지방 순회 개최는 스폰서의 적극적인 지원에 힘입어
골퍼들에게 많은 호응을 얻었으며 지역의 골프
활성화에도 한 몫을 담당했다. 뿐만 아니라 프로들은
지방에 거주하는 갤러리들에게 아낌없는 박수를
받았다. 하지만 1998년(41회) 이후 10년 동안
후원하던 삼성물산이 대회 개최를 포기하면서
아쉬움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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